우리 뇌는 직접 보지 않아도 상상을 통해 머릿속에 이미지를 재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우리는 과거 행복한 기억을 회상하며 추억을 어제 있었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만약 추억을 떠올리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질환이 있다면 어떨까? 일상에 큰 문제는 없더라고 많이 괴로울 것이다. '아판타시아 증후군(Aphantasia)'은 상상하는 능력을 잃는 질환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이유로 사물을 보고 사물에 대한 특징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상상 및 재현할 수 없는 증상이다.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1880년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프랜시스 골턴 경(Sir Francis Galton)이 처음 발견했으며, 그 이후 2005년 영국 뇌과학자이자 엑서터 의과대학(University of Exeter Medical School) 아담 제만(Adam Zeman) 교수에 의해 그 개념이 정립되었다. 2010년 학술지인 뉴로사이콜로지아(Neuropsychologia)를 통해 대중에 소개된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질환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질환에 대한 관심도가 커지고 있다.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질환 아판타시아 증후군,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권순모 원장(마음숲길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자세히 설명했다.
Q. 아판타시아는 어떤 질환인가요?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상상을 통해 머릿속에 이미지를 재현하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를 말합니다. 질환에 대한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정립되었습니다. 후천적 아판타시아 증후군 환자 등장과 FMRI 등 검사에 사용되는 영상기기 등의 발전 덕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유병률(1~3%)이나 발병 원인으로 의심되는 전두엽과 대뇌피질 사이의 신호 교환 이상 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밝혀진 바가 극히 적은 질환이라 여전히 연구가 많이 필요합니다.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넒은 의미로 보면 질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VVIQ(Vividness of Visual Imagery Questionnaire) 외에는 진단을 내릴 수 있는 판단 도구가 없습니다. 심지어 진단 시 환자의 주관적인 진술에만 의지해하기 때문에 자세한 진찰을 통해서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또한 증상이 기억을 시각화하는 단일 능력 이상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증상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질환 혹은 여러 모종의 이유로 환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신체의 비정상적 상태 또는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했을 때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일종의 증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판타시아 증후군 용어를 처음 만든 아담 제만 교수도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단순히 의학적 장애라기보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인간 경험의 흥미로운 변화이고 생산적이고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Q. 상상하는 능력과 회상하는 능력에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아판타시아는 어떤 능력과 연관 있나요?
상상은 외부 자극 없이 기억된 생각이 나 경험하지 않은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 떠올리는 것입니다. 회상은 넓은 의미의 상상 안에 포함된다고 할 것입니다. 아판타시아 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상상과 회상이 모두 가능합니다. 다만 그 기억을 머릿속에 이미지화 시키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Q. 아판타시아 증후군 환자들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나요?
아판타시아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해도 그림을 그리는 능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시각이나 사고의 문제가 없기 때문에입니다. 보고 있는 물체를 그림으로 시각화하는 데는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불어 물체를 상상하면서 그리는 것 역시도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림을 그리는데 꼭 이미지로 떠올리지 않아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과를 그릴 때 꼭 사과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아도 '둥글고' '사과 꼭지가 있고' 이런 식으로 사과에 대해 특징을 텍스트 형태로 떠올려도 그림을 그려내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실제로 유명 애니메이터들이나 작가들 중 아판타시아 증후군이 있다고 고백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그걸 보상하며 일상 기능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Q. 아판타시아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나요?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사진을 보거나 대상을 보고 그 사람을 인식하거나 떠올리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은 '안면인식장애'에 더 가깝습니다. 안면인식장애는 시각 장애와 말하는 능력에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안면인식장애는 안면 인식을 담당하는 '하부 후두측두엽'이나 '해마' 부위의 손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인으로는 '두부 외상'이나 '뇌출혈', '뇌경색', '치매' 등 다양합니다.
Q. 아판타시아 환자들도 꿈을 꾸나요?
아판타시아 증후군 환자들도 당연히 꿈을 꿉니다. 몇몇 전문가들은 아판타시아 증후군 환자들은 꿈도 이미지가 아니라 텍스트나 다른 형태로 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담 제만 교수는 본인의 연구를 통해서 아판타시아 환자들도 평범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각적인 꿈을 꾼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제만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서 깨어 있는 뇌의 기능과 꿈꾸는 상태에서의 뇌의 기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였습니다. 하지만 꿈의 영역 역시 아판타시아 증후군이라는 증상 이상으로 굉장히 주관적이고 객관화가 힘든 영역이어서 정확한 판단은 어렵습니다.
Q.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후천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나요?
아판타시아 증후군은 여전히 연구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아판타시아 증후군의 진단 시 환자의 주관적인 진술에 의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이 매우 어렵습니다. 심지어 질환의 경과를 관찰할 신뢰 있는 도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치료에 대한 연구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현재 1973년에 개발된 VVIQ라는 도구가 있지만 검사의 객관성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적절한 평가가 어렵습니다.
도움말= 하이닥 상담의사 권순모 원장(마음숲길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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