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유명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의 과거 학교 폭력 문제가 심심치 않게 수면 위로 올라온다. 학교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학교 폭력에서 벗어난 후 오랜 기간 잊으려 애썼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해자들이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하면서 다시 악화되어 피해자는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혹자는 학교 폭력이 학창 시절에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학교 폭력은 매우 잔인하며,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미래에 끔찍한 악영향을 미친다.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학교 폭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권순모 원장(마음숲길정신건강의학과의원)과 함께 학교 폭력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봤다.
학교 폭력의 특성
학교와 학교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 행위를 학교 폭력이라고 주로 지칭합니다. 하지만 어떤 연구에서는 '학교 폭력을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적 행위를 포함한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폭력은 연령대와 상관없이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악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학교 폭력이 가지는 위해성은 여타 다른 폭력과는 조금 다른 4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대부분 소아·청소년기의 학생으로 신체적·정신적으로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폭력은 정상적인 발달을 막고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등 피해자 삶에 전방위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부모나 선생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학교 폭력의 특징은 집단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가해자 자체가 집단일 수도 있으며 한 명이나 소수의 가해자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으나, 대부분 다수의 묵인하에 이루어집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이 문제는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자책에 빠지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이 가지는 세 번째 특성은 지속성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입학하면 학교의 구성원에 큰 변화 없이 몇 년간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시작된 학교 폭력은 대체로 오랜 기간 지속되기 쉽습니다. 심지어, 시간이 흐를수록 가해자들은 오히려 죄책감이 무뎌지고 폭력에 익숙해지면서 더욱 악랄한 행동으로 변해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외부로 도움을 요청하면 가해자가 이를 알아채고 피해자에게 더 악랄한 방식으로 보복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특성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순환구조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학교 폭력 피해자는 폭력으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망가집니다. 가장 타격이 큰 곳은 바로 정신적인 부분입니다. 학교폭력에 오래 노출된 피해자는 우울증,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쉽게 느끼게 되고 피해의식으로 인해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을 위험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인 아이가 타인에게 공격성을 보이며 가해자가 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학교 폭력, 트라우마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학교 폭력은 피해자를 철저하게 망가뜨립니다. 학교 폭력에서 간신히 벗어났다고 해도, 학교 폭력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는 피해자를 괴롭히며 다양한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경험하는 정신질환으로는 '적응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 '외상 및 스트레스 관련 장애'와 '우울장애', '불안장애', '해리장애' 등이 있습니다.또한, 학교 폭력이 피해자의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하고 성장 과정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학교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악화되어 '우울', '불안', '대인관계 회피', '불면증' 심한 경우에는 환각이나 망상 등의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나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억압이나 부정 등 극단적인 방어기제를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방어기제를 사용하면 당장은 괜찮아 보일 수 있으나 시간이 흘렀을 때 더 큰 심리적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트라우마란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을 말합니다. 원래는 신체적인 상처에서 비롯된 용어이나 현재는 주로 정신건강의학과 등의 심리적 부분을 다루는 분야에서 더 흔하게 사용합니다. 심리학에서의 트라우마는 의미 자체에 지속적인 상처를 남기는 외상이나 충격을 의미합니다. 사건을 경험할 당시의 강렬한 감각(시간, 청각, 촉각 등등) 경험이나 기억으로 인해 당시의 우울, 불안, 좌절감, 무기력감 등의 감정을 재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학교폭력이 일어난 시기는 학창 시절이지만, 그때의 상처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생활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폭력 예방, 피해자 보호가 먼저
학교 폭력은 일관되고 강력한 대처만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교 폭력에 대한 대처는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이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학교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미성숙한 소아·청소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해결과 아직 발달단계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가해자는 반드시 학교 폭력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은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 본인은 피해자이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며, 본인이 학교 폭력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가해자도 처벌을 통해서 폭력과 지배, 그리고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며 본인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학습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학교 폭력에 대한 대처는 최대한 신속하고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과도할 정도로 빨라야 하며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가해자의 처벌 여부는 사건의 세부사항이 더 명확해지고 결정 내려도 늦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더 망가지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가해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하고, 사건을 면밀하게 조사해 학교폭력 심의 위원회를 개최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대처는 피해 학생이 겪을 수 있는 정서적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가해자의 보복 등 더 큰 문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중요
학교 폭력에 대한 대처에는 관련자들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와 도움이 중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관련자들은 피해자의 보호자와 담임 선생님입니다. 보호자는 피해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보호자가 먼저 지치거나 잘못된 죄책감을 느낀다면 이는 곧바로 회복이 필요한 피해자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 피해자가 너무 어리거나 각종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상처와 사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 보호자는 피해자의 대화의 통로이자 대변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때 자신의 감정보다는 피해자의 감정을 좀 더 이해하고 피해자를 충분히 배려하고 도와야 합니다. 학교 폭력이 일어나면 관련자인 담임 선생님도 대부분 힘들어합니다. 제 외래에도 학교 폭력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선생님들이 상당히 많이 찾아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일선에서 피해자와 보호자를 보호하며 가해자와 가해자의 보호자에 대한 대처를 동시에 하는 만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부분 사명감에 본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일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본인의 감정을 돌보지 않는다면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이 더해져 후에는 사건에 대한 대응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선생님에 대한 적절한 배려와 보호 역시 필요합니다.
학교 폭력, 대처는 일관되고 공정하게
학교 폭력에 대한 대처는 일관되고 공정해야 합니다. 간혹이 일관성과 공정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의 공정은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공정이 아닙니다.처리 방식이나 처벌에 대한 일관성과 공정입니다. 이런 판단을 결정하는 요소는 '가해자가 평소 어떤 성격이었는지, 장래가 유망한지', '피해자가 어떤 아이였는지'가 아니라 오직 '학교 폭력'이라는 범죄와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맞춰져야 합니다.학교 폭력은 하나의 집단 내에서 발생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는 특성 속에서 피해자는 부적절한 죄책감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해자는 응당 가져야 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리 방식에 있어서 일관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면 이런 잘못된 상황 인식을 개선할 수가 없습니다. 학교 폭력 문제의 원인은 피해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 방법 역시 시스템이나 환경에서 먼저 찾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이슈가 되는 유명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학교 폭력 문제로 인해 책임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학교 폭력 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가해자에게도 자신의 행동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인생을 바꿔 놓았는지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피해자에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것 봐 모두가 네 편이야. 이유는 상관없어. 그 아이가 너에게 그런 행동을 너한테 한건 그 아이의 잘못이야. 너는 보호받아야 했어. 좀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힘을 내”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권순모 (마음숲길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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