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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청년들의 기억력은 점점 퇴보하는가 ① 디지털치매
2004년에 개봉한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있다.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로맨스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잃지 않으려 병마와 처절하게 싸우는 수진과, 그녀의 기억과 행복을 지켜주려는 철수의 노력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청년들의 기억력이 위험에 빠졌다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병같이 기억력 저하를 불러일으키는 인지 기능의 퇴화는 주로 중년과 노년층에게서 보이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들어서 영화 속 젊은 수진와 같은 알츠하이머병은 아니지만 젊은 나이에 건망증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영츠하이머(Young: 젊은+ Alzheimer: 알츠하이머)'라 부르는데, 대부분 급격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이 원인이다.영츠하이머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형배 원장(인천참사랑병원)이 자세하게 설명했다.몇 년 전부터 젊은 세대에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알츠하이머병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겪게 되는 내용의 영화나 실제 사례들을 접하면서, 비슷한 문제를 경험한 분들이 걱정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영츠하이머’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지면서 이런 걱정은 이제 하나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요즘입니다. 실제 임상현장에서도 기억력의 저하를 호소하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사실 원인은 다양해 보입니다. 60대 노인이 되어서야 한 번쯤 걱정할 만한 치매에 대한 문제를 2030세대에 미리 걱정하고, 영츠하이머란 새로운 언어로 공유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기기이겠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변화의 속도에 맞춰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 인터넷에 접속하여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타인과의 소통에 힘쓰며 사회 구성원에 포함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과거엔 전화를 하려면 동네에 있는 전화박스를 찾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편하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패드나 탭, VR, TV 등 계속 확장되고 있는 사물 인터넷의 변화는 생활의 편리성을 더해주지만, 한편으론 걱정스러울 만큼 우리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특히 지금의 2030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기기들과 친숙하게 자라왔기 때문에 그 의존도는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질환 '디지털치매'

디지털과 치매는 상반된 의미를 가진,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디지털은 지식의 성장을, 치매는 지식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오히려 뇌기능의 후퇴를 걱정하는 상황이 된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한창 뇌의 기능이 왕성할 젊은 세대에서 기억력의 저하가 나타난다는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전화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당황한 경험,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놓고 무슨 단어를 적으려고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던 일, 어제 SNS에서 나눈 이야기와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실수,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잘못 보내는 착각 등 여러 상황에서 치매를 걱정했던 경험들은 한두 번쯤 있었을 것입니다.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혁신적인 변화가 더해지면서 이제 우리 손안에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세상의 정보를 마음대로 접할 수 있는 스마트한 기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뉴욕의 날씨가 어떤지, 런던에는 어떤 뉴스가 있는지, 도쿄의 요즘 뜨는 맛집을 검색할 수도 있고 SNS를 통해 다양한 세계인의 생각을 접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많은 정보는 제한된 우리의 뇌 용량으로 처리하기에는 어느새 역부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순간적인 정보 처리에 해당되는 작업기억을 포함한 단기 기억, 그리고 의미, 동작, 습관, 일화성의 사건들을 저장하는 장기 기억 등 다양하게 분류되는데, 디지털 기기로 얻는 광범위한 정보들은 어쩌면 단기 기억이거나 설령 장기 기억이더라도 일화성 기억에 해당되어 시간의 영향을 받아 소멸되거나 새로 입력되는 정보들에 밀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없어진 정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기억이 저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당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의 뇌는 기존의 것을 지우고 새로운 것을 저장합니다. 이것은 컴퓨터의 RAM이나 HDD의 용도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어느 한계점에 도달하면 정보처리의 효율성을 위해 기존의 것은 삭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삭제해야 할 정보 중에 나중에 써먹을 만한 정보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도를 따져서 표시를 한다거나 특별한 공간에 따로 저장을 해 둬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기억의 저장에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 내측 측두엽의 ‘해마’입니다. 해마는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의 구조물로 좌, 우측 뇌에 각각 한 개씩 존재하는데, 지나치게 디지털 기기에 의존해 정상적인 뇌 기억 과정인 저장, 표시, 삭제와 같은 절차들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해마를 비롯한 대뇌 피질의 손상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초기 생존을 위한 파충류의 뇌로부터 시작되어 사냥을 위한 포유류의 뇌를 거치고 창조를 위한 영장류의 뇌로 점점 진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뇌가 이렇게 발달하게 된 것은 사회 공동체와 문명의 발달에 따른 것과 보조를 맞추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에 대한 지나친 노출과 의존도는 오히려 뇌의 발달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멀지 않은 미래에는 SF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기계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영장류의 뇌는 점점 퇴화되고 단순한 포유류의 뇌, 그리고 본능에 충실한 파충류의 뇌의 기능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디지털치매는 기억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나친 시각적 자극으로 후두엽(뇌의 뒷부분)이 과활성화되는 반면, 제일 중요한 전두엽(뇌의 앞부분)의 기능은 위축되어 종합적인 판단, 계획,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지는 일상생활 기능의 저하, 지나친 충동성이나 공격성으로 이어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의 창조성이나 소위 ‘인격’이라는 것은 전두엽의 발달에 힘입은 바가 큰데, 지나친 디지털 기기 의존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뇌의 기능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의 도전으로 인해 인간의 뇌는 해마의 위축으로 인한 기억력의 저하, 대뇌 피질의 고등 기능의 이상 등 여러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은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무한한 확장성과 정보의 교류, 차별 없는 소통과 만남, 공감과 희망의 공간,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가져오는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하지만 잘못 과용될 때, 우리의 삶을 더 고립시키며 지각을 왜곡 시키고 기억력과 같은 인지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력 상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김형배 원장 (인천참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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