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의 답변을 가지고 있겠지만, 한국인의 경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화’다. 지난 11월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Pew Research) 센터가 주요 17개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설문 조사에 따르면, 17개국 평균 결과에서 가족(28%)이 1위에 뽑힌 반면 한국인 응답자들만 물질적 행복(mat0erial well-being)을 1순위(19%)로 꼽았다. 또한, 올해 6월 시장조사기업 칸타의 ‘칸타 글로벌 모니터 2020’ 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인은 돈(53%)을 시간(20%), 열정(19%)과 비교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산이라고 응답했다.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물질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는 증거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여러 사회적 이슈로 인해 불투명해진 미래 때문에 물질에 더 집착하게끔 만드는 요인이 된 것 같다”라고 밝혔다. 물론 현대 사회가 자본주의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재화’가 주는 안정감의 가치가 올라간 상황이지만, 다른 선진국과 다르게 여전히 물질을 우선시하는 한국인의 인식은 조금 씁쓸하게 느껴진다.
한국인의 물질만능주의
그 어떤 것보다 물질을 우선시하는 인식은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는 인생의 성공과 부의 축적 그리고 행복을 동일시하며, 가뜩이나 취업난과 끝없이 올라간 집값으로 인해 허탈함을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물질만능주의다. 많은 사람들이 재화가 행복을 보장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조사 결과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의 행복지수는 소득 수준과는 별개인 듯하다. 유엔의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행복지수(삶의 만족도)는 156개국 가운데 54위로, 2012년(41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낮아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은 1990년과 비교해서 4배가 넘게 늘었지만(1인당 GDP $6,516→$29,743), 행복지수는 꾸준하게 하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행복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일리노이 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UIUC) 심리학 교수 에드 디너(Ed Diener)는 이미 2011년에 “한국인은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이며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낮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는 한국의 낮은 행복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라고 설명하며, “한국인의 물질중심주의적 가치관은 세계 최빈국인 짐바브웨보다 심하다”라고 강조했다.
물질주의와 정신건강
문제는, 이러한 한국인의 물질만능주의적 사고가 한국인의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1992년 발표된 미주리 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 마샤 리친스(Marsha l. richins) 교수의 물질주의를 위한 소비자 가치 지향과 측정(A Consumer Values Orientation for Materialism and Its Measurement) 논문을 살펴보면, 물질주의 가치관에 물든 사람들은 ‘더 비싼 집, 차를 소유한 사람들을 존경한다’, ‘무엇이든 구매하는 행위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물질주의 가치관이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주목했다.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연구들이 물질주의는 낮은 자존감(Low-self esteem), 높은 우울감(High-depression), 높은 불안감(High-anxiety), 그리고 낮은 긍정(Low-positivity)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2014년 미국 심리학회(APA: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가 발표한 팀 카서(Tim kasser) 녹스 대학교(Knox College) 심리학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물질주의는 ‘낮은 수준의 행복(Lower levels of well-being)’, ‘낮은 사회적 관계의 질(Less pro-social interpersonal behavior)’ 그리고 ‘더 나쁜 학업 결과(Worse academic outcomes)’와 관련되어 있다. 카서 교수는 “이뿐만 아니라, 물질주의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주변 사람들마저 파괴한다”라고 말했다.
불안감과 물질주의
그렇다면, 물질주의적 가치관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팀 카서 교수는 “불안감이 물질주의를 부른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사회적 거부감, 경제적 두려움 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불안하거나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 더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왜 현재 대한민국이 점점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어가는지 설명이 가능한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으로 인해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늘어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낮아지는 취업률, 줄어드는 혼인율 등의 사회적 문제로 점점 더 물질주의에 취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을 포함한 21개국을 대상으로 칸타가 진행한 ‘코비드19바로미터 9차 조사’에서의 코로나19상황에 대한 우려 수준’ 평가에서 한국인의 부정적 응답률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아마 한국의 청년 자살률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김형배 원장(인천참사랑병원)은 “청년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안정된 환경에서 정서적 발달을 해야 할 학창 시절에 지적 발달만 강요 당하면서 올바른 정체성 확립이 어려웠을 수 있다. 정서적 발달을 통해 정신적 포용성, 유연함, 사회적 정체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실업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위기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또한 물질주의로 인한 불안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일수록 마음의 여유가 더 필요하다. 해결하기 쉬운 것부터 순서를 정해 정리해 나가도록 하고, 불안과 우울감은 여가활동이나 가까운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하면서 한번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시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김형배 원장 (인천참사랑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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