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경멸하며 싸우고 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금의 남녀 갈등을 바라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시선은 어떨까?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김윤석 원장(서울맑은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전문가의 시선으로 남녀 갈등에 대해 설명했다. 김윤석 원장: 제 기억 속에서 ‘혐오’라는 단어는 주로 ‘혐오 시설’, ‘혐한 문제’ 등 집단이 한 대상을 미워하고 꺼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앞선 단어들은 듣더라도 감정의 동요가 적게 느껴집니다. 나의 일이 아니거나 부분적인 문제라고 생각되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점도 이성적으로 탐색해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같은 ‘혐오’라는 단어가 들어있지만 우리를 끓어오르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남혐’, ‘여혐’이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나요?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고 동시에 여성이 남성을 혐오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서로를 미워하는 모양새는 같아 보이지만 각자의 이유는 너무 다릅니다. 따라서 과거의 익숙했던 ‘혐오’라는 단어에 비하여 그 매듭을 풀기가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인류 사회학자, 진화론자, 인권운동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남녀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남녀 갈등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신과 의사의 시각은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남녀 갈등은 왜 발생하는가?
-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생각의 조각들
요즘의 정보들은 과거에 비해서 실시간으로 사회연결망, 스트리밍 서비스 등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왜 남성 또는 여성만 희생하고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의 파급이 커졌습니다. 세상이라는 시스템은 기성세대의 느린 변화에 맞춰서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 남녀 갈등의 주인공인 10대~30대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기존의 부모 세대의 성 역할처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직되어 있던 성 역할은 수평적인 정보의 물결을 타고 온라인에서부터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간혹 술자리에서나, 친구들과 하소연하듯 털어놓고 휘발되어 버릴 만한 이야기들도 인터넷이라는 원고지에 기록물로 남겨져 반복되어 재생산됩니다. 물론 성 역할의 변화에 필요한 내용도 있지만 혐오를 불러일으킬 정도의 극단적인 게시물의 내용은 사람의 뇌를 자극해서 그것을 확대 생산하는 역기능을 낳기도 합니다.- 더뎌진 경제 성장 속도
한 경제채널 진행자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1970년대에 발표된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는 가수 송대관의 곡 ‘해 뜰 날’의 가사를 보면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온다는 희망이 담겨있습니다. 이 시기에 사랑받은 노래들은 희망찬 내일을 약속하는 곡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10% 안팎의 높은 경제성장률로 2% 대인 지금과 비교해서 비록 현실은 힘들지라도 내일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요즘 새로 나온 가수가 내일의 희망에 대한 가사말을 담는다면 과연 공감할 젊은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노력해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들이 하루를 지탱하기 힘들게 합니다.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건전한 경쟁 상대가 아닌 ‘기울어진 운동장’의 주인공들로 생각하게 됩니다. 남녀 갈등이란 끊임없이 제자리 뛰기를 하며 있는 지쳐 있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투사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요?-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1년에 한 번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동창회가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여행은 총 다섯 번 갔는데 하필이면 특정 친구가 두 번 참석했을 때 모두 비가 왔습니다. 이제 동창회에서는 그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면 꼭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다음 모임에는 그 친구의 참석 여부가 화두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개인이 경험한 일들이 대표성을 띤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100명 중에 동일한 경험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 10명이 모여서 서로 격하게 공감하고 그것을 기정사실화 시키는 경우도 이에 해당합니다. 한 연구 결과에서는 실제 지난 3개월간 댓글을 달거나 글을 쓴 사람들은 100명 중 8명꼴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는 실제의 세계에서는 남혐과 여혐이 온라인상에서처럼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온라인상의 배출구와 실제의 세상은 온도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의 성 역할에 대한 건강한 인식이 갖춰지기 이전에 극단적인 혐오가 우리의 뇌에 각인되어 일반화되는 순간 이해와 타협을 위한 마음의 여유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무를 둥글게 깎아서 만들기 시작한 바퀴에서 가볍고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하여 지금의 자전거처럼 바큇살이 발명되기까지는 5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수많은 세월이 쌓인 흔적입니다.
수천 년 전부터 남녀 성별의 역할은 시대 문화적 맥락에 따라서 달라져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성 역할이 미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부모님에게 여쭤보시기 바랍니다. 남자로, 여자로 태어나게 되어 평생 서로가 원망스럽고 불행한 삶을 살고 계시냐고.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환경에 맞춰 소통해야 합니다. 주장이 뚜렷한 것은 좋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귀를 열어놓지 않고 극단적인 주장만 펴는 것은 갈등의 골만 깊게 만들 뿐입니다. 서로가 왜 그렇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지금의 단면만을 보기 보다 사회적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며 대화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남녀 편가르기를 하는 서슬 퍼런 칼날 같은 인터넷 글보다 온기와 만남이 주가 되는 건강한 사회를 그려봅니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김윤석 원장 (서울맑은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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